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04 대한민국 (문단 편집) ==== 2권 ==== 황궁으로 강하한 한국 공수부대원의 공격에 황궁을 지키는 호위병들은 순식간에 패배하고, 메이지 천황은 한밤중에 몰려온 공수부대원들에게 포로가 되어 항복,[* 항복하기 직전에 권총으로 황태자 이척을 공격하지만 방탄복 때문에 안 먹히는 걸 보고 항복했다.] 황태자 이척에게 [[삼배구고두례]]를 올려 항복의 뜻을 표한다. 천황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국 국민들은 열광하고, 극우파들은 천황 일가를 모두 처형하고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하라고 시위를 벌인다. 일본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주요 관공서, 군부대, 신문사들이 모두 공수부대원들에게 점거당하여 패배하고, 국군은 일단 보도규제를 통해 전날의 소란은 그저 군부대의 비상훈련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배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이지 천황은 스스로 칭호를 천황에서 일왕으로 낮추고, 한국을 형님의 나라로 모시겠다는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몇몇 사람들이 천황의 결정에 반발하여 황궁을 찾았지만 이미 황궁은 국군 병사들로 가득찬 뒤였다. 대국민담화문 이후 한국과 일본은 '도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은 문자 그대로 을사조약의 주어와 목적어만 바꾼 것으로 일본을 한국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조약이었다. 패배한 메이지 일왕은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자결하고, 강경파의 거두 노기 마레스케 대장도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왕위에는 한국에 가서 동생의 예를 갖추고 귀국한 일왕의 아들 요시히토가 [[다이쇼 덴노|다이쇼 일왕]]으로 즉위했으며, 고종은 일본 왕실에게 '부여'라는 성씨를 하사했다. 그런데 원호 사용을 금지하자 일본 내에서는 반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한국은 한국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영화를 찍어서 일본에 수출하여 일본의 반한감정을 가라앉혔다. 국군에게 패한 러시아 극동총독 유리 프리루코프는 극동함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일본군과 다시 한번 싸우기 위해 분주했다. 그런데 본국으로부터 크로파트킹 장군이 장병 15만 명과 함께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공명심에 사로잡힌 유리 총독은 크로파트킹이 오기 전에 전공을 쌓을 생각으로 출항을 서둘렀다. 하지만 러시아군 기지에 잠입한 [[HID]] 요원들에게 출항 정보가 새어나가고, 국군은 주력이 된 일본군에게 한-1 소총과[* [[M1 개런드]] 소총을 이름만 바꾼 것.] 배달-50을[* 마찬가지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빌려주고 국군의 막강한 화기를 시연하면서 러시아를 막아낼 준비를 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은 [[청나라]]에 사신을 보낸다. 한국 사신으로 온 외무부장관 송영재는 배달민족의 옛 영토를 모두 회복하고자 하니 만주국과 몽골국을 독립시킬 것을 요구했다. 서태후가 반발하자 이번에는 일본 사신 [[고토쿠 슈스이]]와 [[이토 히로부미]]가 나서 반박하고, 여기에 광서제까지 나서면서 궁궐이 시끄러워진다. 결국 서태후가 만주든 몽고이든 마음대로 빼앗아보라며 말을 자르자 사신단들은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못 느껴 서태후를 달래기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고 귀국해버렸다. 1904년 7월 23일 러시아 극동함대는 해가 지자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출항하고, 뤼순에 있던 20만 병력은 참모장 보리스의 지휘 아래 똑같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하지만 극동함대는 국군에 편입된 전함 미카사와 미사일 어뢰정 전대들에 농락당하다가 아까운 군함만 잃은 채로 뤼순으로 돌아가고, 보리스는 라오양 부근에서 일본군과 조우하여 전투에 돌입한다. 러시아군 기병대가 돌진하자 국군은 플레쳇탄을 탑재한 로켓포를 2.5톤 트럭에 설치하여 일방적으로 러시아 기병대를 학살하고 여기에 [[구룡 다연장로켓]]과 [[K-9 자주곡사포]]가 불을 뿜으며 러시아군을 학살했다. 5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도 돌진하여 러시아군과 맞붙고 일부 러시아군이 후퇴하여 트럭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자 국군 트럭은 일단 빠졌다가 러시아의 측면을 친다. 전방에는 신형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몰려오고 측면에서는 국군이 플레쳇탄을 쏘자 러시아군은 80%에 달하는 사상률을 기록한 채로 뤼순으로 후퇴했다. 패배한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한-1 소총을 노획했는데 러시아 정부는 총에 MADE IN USA라고 적힌 걸 보고 미국이 일본에게 신무기를 제공했다고 판단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일본에 제공한 무기들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항의 서한을 보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 정부는 [[스페인]]과 [[일본]]을 의심했지만 일본 공사는 러시아의 모함이라고만 주장했다. 의심이 거세질 걸 우려한 미국 정부는 적당한 때에 일본과 러시아를 화해시키려고 한다. 한편 1904년 8월 11일 모항 리바우에서 출발한 러시아 발틱함대는 8월 16일 도거뱅크 해협에서 영국 어선단을 일본군 수뢰정대로 착각하여 모조리 학살하는 사고를 쳤다. 분노한 영국 정부는 배상금 65,000 파운드를 요구하고 러시아를 향한 유럽의 여론이 악화된다. 발틱함대 사령관 엔스키 중장은 이미 사고를 친 이상 공적을 세우면 무마할 수 있다고 일본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1904년 8월 20일, [[후쿠시마현]]에서는 마쓰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제9사단 2연대 1대대도 마쓰리에 참여하는데,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 잠입해 있던 일본의 비밀결사 신백호대 소속 무사들이 칼을 빼 들고 무방비 상태였던 국군 병사들 수십 명들과 대대장을 살해했다. 급히 [[5분대기조]]가 출동했지만 무사들의 빠른 움직임에 3명 밖에 죽이지 못하고 애꿎은 민간인 70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한국은 일본정부를 움직여 야간통행금지 및 무기소지자 처벌 등 비상대책을 시행한다. 기습에 성공한 신백호대의 대장 오카 토모카츠는 검은 정장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국군으로부터 빼돌린 [[M1 개런드]]를 지급받고 [[사회민주당]] 당사를 공격할 것을 부탁받는다. 이들은 9월 2일 소총훈려을 받은 무사 100여명을 이글고 사회민주당 청사를 습격했지만 이는 사회민주당 총재 고토쿠가 짠 함정이었다. 총의 개머리판에는 소형 폭탄에 설치되어 있었고 총을 든 무사들은 폭발에 히말려 중상을 입었다가 숨어있던 [[HID]] 요원들에게 전멸당한다. 8월 26일 한일연합군은 뤼순을 공격하여 유리 총독을 비롯한 러시아 극동총독부 지휘부를 포로로 잡았다. 서쪽에서 진군하던 크로파트킹은 뤼순 함락 소식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을 재정비했다. 50만 대군이 집결하자 크로파트킹은 일부 병력만 블라디보스토크에 남겨두고 뤼순을 탈환하려고 했지만 한국은 [[고구려]]가 [[수나라]]와 싸울 때 중국 민중들이 부른 노래를 퍼트려 러시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몽골에 사신단을 파견하여 몽골 지도자들에게 한국, 일본, 몽골, 만주가 하나되는 배달연합을 건설하자고 제안했고 그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까지 제시하자 오이도프와 타알라트를 비롯한 몽골 지도자들은 배달연합 건설 계획에 찬동한다. 그러는 사이 일본 제3군은 한국의 명에 따라 긴 참호를 파서 러시아의 돌진을 저지한다. 같이 1904년으로 넘어온 러시아 학자들을 써먹기 위해서는 그들의 최대한 달래야 했기에 한국은 최소한의 사상자로 러시아군을 패퇴할 계획을 짠다. 우선 러시아군에게 더 이상 전진하면 1시간마다 4명씩 죽을 거라고 경고한 뒤, 오토바이를 탄 저격조를 편성하여 포병을 주 타겟으로 삼아 1시간마다 4명씩 저격했다. 러시아군의 사기는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지만 크로파트킹은 꾸역꾸역 봉천까지 내려왔고, 일본군이 참호를 파서 숨어있다는 보고를 받자 병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방어선을 뚫으려고 했다. 하지만 국군의 압도적인 포병 화력과 [[철조망]]으로 무장한 방어선 앞에서 러시아군은 몇 차례나 패배하여 5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물러났다. 한편 발트 함대는 전쟁에 협조하는 영국과 독일 덕분에[* 영국은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락했고 독일은 발트 함대가 들른 항구마다 최우선적으로 석탄을 보급해 주었다.] 예정보다 빠르게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발트 함대는 예상보다 순조로운 항해의 의문을 가지면서도 빨리 크로파트킹을 돕기 위해 [[대한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 밑에는 한국 잠수함들이 미행하고 있었고 때가 되자 UDT 요원들이 일제히 발트 함대의 스크류를 파괴했다. 전함 미카사를 발견하고 전투에 돌입하려던 발트 함대는 갑자기 모든 배의 스크루가 고장나자 당황하고, 그 사이 주포를 겨누는 전함 미카사와 함께 한국 해군 고속정들이 발트 함대를 향해 돌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